단체 대화방에서
겨자색 네모 하나
“회색. 이걸로 끝. 뭐가 묻어도 티가 안 나.” 동민이 쓰자 삼 초 뒤에 채영이 느낌표 한 줄과 함께 받아쳤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흰색 아니면 안 해.” 같이 사는 넷의 단톡방은 점심때부터 이러고 있었다. 집주인이 복도를 새로 칠해도 된다고 허락했는데, 알고 보니 복도는 모두의 의견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소윤은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대화를 따라 읽었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복도에는 창이 없어서, 저녁이면 천장 등이 벽을 오래된 종이 색으로 바꿔 놓았다. 회색을 칠하면 터널이 될 것이다. 흰색은 봄이 오기 전에 자전거 바퀴 자국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여 줄 것이다. 그 복도에 필요한 것은 등불 아래에서 일부러 고른 색처럼 보이는 따뜻한 무언가였다. 부드러운 겨자색, 삶은 밤의 속살 같은 노랑. 소윤의 눈에는 그 색이 정확하게 보였다. 소윤은 “노란색은 어때? 쨍한 거 말고, 뭐랄까”까지 치고 멈췄다. 그 색을 가리키는 낱말이 없었고, 동민은 노란색은 부엌에나 칠하는 거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윤은 그 메시지를 지웠다. 우진이 투표를 올렸다. 회색 두 표. 흰색 한 표. 네 번째 이름은 표를 던지지 않은 채 거기 있었다. 소윤의 이름이었다. 채영이 썼다. “소윤??”
집에 와서도 소윤은 답하지 않았다. 쓰다 남은 물감 튜브를 넣어 둔 침대 밑 상자로 가서, 접시 위에 황토색과 흰색을 섞고 고동색을 아주 조금 더한 다음, 복도 벽에 책 한 권 크기의 네모를 칠했다. 첫 번째 것은 초록이 너무 돌았다. 색을 고쳐서 그 옆에 두 번째 네모를 칠했다. 그러고는 천장 등을 켜고 현관문까지 물러나 섰고, 어깨가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거였다.
소윤은 채영의 빨간 코트가 가장자리에 걸리도록 해서 그 네모를 찍었다. 그 빨강이 주장의 절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톡방에 보냈다. 설명은 달지 않았다. 페인트 한 조각 때문이라기에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동민이 먼저 답했다. “어.” 그다음 채영. “잠깐만, 어어.” 소윤은 휴대폰을 신발장 위에 엎어 놓고 접시를 헹궜다. 그다음을 알게 되는 일은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