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대화방에서
세탁기 뒤의 조임쇠
동훈이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가족 단톡방에는 새 메시지가 마흔한 개 쌓여 있었다. 맨 위로 올라가 보았다. 아버지 댁 세탁기가 욕실 바닥에 물웅덩이를 만들어 놓았고, 아침 여덟 시부터 명희 고모와 여동생 동희와 사촌 둘이 그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고모는 그 세탁기가 십오 년이나 됐으니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동희는 아빠가 도와 달라는 말을 얼마나 안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긴 문단 세 개를 써 놓았다.
동훈은 복도에 서서 그것을 다 읽었다. 물이 어디서 나오는지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훈은 썼다. “아버지, 앞쪽이에요 뒤쪽이에요? 바닥 사진 좀 보내 주세요.” 그러고는 휴대폰을 선반에 올려놓고 계란을 부쳤다.
사진은 십일 분 뒤에 왔다. 살짝 흔들렸고 한쪽 귀퉁이에 아버지의 슬리퍼가 찍혀 있었다. 물은 뒤쪽 왼발 밑에 고여 있었다. 그렇다면 문 쪽 고무 패킹은 아니다. 아마 배수 호스이거나, 호스를 물고 있는 조임쇠일 것이다. 동훈은 “조임쇠예요, 아무것도 살 필요 없어요”라고 치기 시작했다가 지웠다. 아직 조임쇠를 눈으로 본 것이 아니었고, 글로 써 놓고 틀리는 것은 싫었다. 보낸 것은 이랬다. “아무것도 주문하지 마세요. 네 시에 갈게요.”
동희가 따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빠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일주일째 그 바닥을 걸레로 닦고 있었대. 일주일이야, 오빠.” 동훈은 그것을 두 번 읽었다. 언제부터였는지에 관한 정보 같았다. 그래서 답했다. “그럼 조금씩 새는 거네. 좋은 신호야.” 동희는 마침표 하나를 달랑 보내왔다. 동훈은 그 마침표를 한동안 들여다보았지만, 그것이 자기한테 무엇을 바라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네 시에 동훈은 손전등을 입에 물고 세탁기 뒤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조임쇠는 녹이 슬어 끊어져 있었다. 동훈은 차에 싣고 다니는 통에서 하나를 꺼내 갈아 끼우고, 짧은 코스로 한 번 돌리면서 호스가 끝까지 마른 채로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차를 내와서 문간에 서 있었고, 아버지 역시 말이 별로 없었다. 동훈은 마른 바닥을 찍어 아무 설명 없이 단톡방에 올리고, 저녁을 먹고 갔다.